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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한국 토종개-제주견

숨겨진 한국 토종개-제주견


우리나라 애견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 빈약함에 아쉬움이 많다.

진돗개, 풍산개, 그리고 삽살개---아무리 봐도 
그 종류가 너무 소수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토종개로서 아키다 견, 혹카이도 견, 가히 견, 
기슈 견, 시바 견,-
 더해서 인공적으로 개발한 찡, 일본 스피츠, 
도사 견 등등 우리에 비해서 
너무 많은 견종들이 있어 
그 풍부함이 부럽다.

국토는 좁지만 한국의 긴 역사와 인구의 크기로 보아서 
우리도 좀 더 많은 순종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안 일어 날 수가 없다.


불과 100년도 전에 한 때는 한국 남해안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던 거제개, 
완도개, 해남개들은 물론이고 
내륙에도 불개 같은 토종개도 있었을 텐데도 
별다른 기록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불과 몇 종류 남지 않는 한국 토종 개중에서도 우수한 
제주개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제주개 -황개, 흰개( 황구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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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 블로그에 포스팅한 ‘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의 
글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제주개를 심도 깊게 접촉할 수 있었다.


본 글은 상기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와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


나는 제주개를 사진으로 처음 만났었다.

그때까지 제주개에 대해서 별다른 지식만 있었던 나는 느닷없이 
메스컴에 튀어나와 
제주 토종개라 자처하는 개 사진으로부터 별로 
긍정적인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메스컴의 사진으로 본 제주개는 문자 그대로 진돗개의 아류로 보였다.

모색이 흔한 황색이고 체구도 빈약해서 눈을 끌만한 외모적인 
특징이 없었다.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진돗개 전문가라는 분과 같이 제주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책도 쓰고 방송에도 나오던
소위 진돗개 전문가였다. 

그는 일언지하에 제주개는 진돗개의 잡종이라고 저평가했었다.


나는 또 개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냥꾼이 제주개를 
악평하는 것도 들었었다.

제주개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는 그는 제주도가 
진도의 흉내를 내서 
별 볼 일 없던 개를 도(道)의 대표 개로 
내세우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흘려 들었지만 그들 말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는 기억이,
 나도 제주개를 별로 크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케 한다.


나는 진돗개의 고향 진도에서 진돗개의 조상이 몽골에서 왔고 
검정 흑구가 
진짜 진돗개라고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진실을  밝혀  본다고 신기루 쫓 듯
 쫓아 다녔었다.


진돗개의 조상이 제주도에 몽골인들이 유입한 라이카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얻고 
제주도 쪽을 조사하다가 제주도의 제주개 
전문가 허 은석 씨의 존재를 알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참고로 말하지만 이 글을 엮은 자료는 물론 얹은 사진도 그가 
 제공한 것이다.)

물론 제주 라이카는 이미 멸종했기에 기대를 하지 않고  
지금 라이카의 자취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를 
제주까지 가게 만든 것이다.


그의 집에서 말로만 듣던 제주개를 처음 만났다.

(금상 첨화로 라이카의 블랙 앤드 탠의 색깔을 그대로 이어 
 받은 제주개였다.)

제주 청개(흑구)- 허 은석씨 검돌이의 늑대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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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제주개는 그간 내가 제주개에 대해서 가졌던 잘못된 
생각을 
여지없이 수정하게 만들었다. 


제주개는 진돗개의 잡종이라는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잡견이라면 뭔지 몰라도 인상적으로 부족하거나 빈약한 구석이

보여 져야 하는데 이 개는 그런 것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었다.

그 균형미는 빳빳하게 선 장대 꼬리가 받쳐주고 있었다.

그 인상적인 꼬리는 갈수록 두꺼워져 긴 역삼각형의 형태였다.


나는 첫 인상을 바탕으로 제주개를 요모저모 뜯어보았다.

체구가 진돗개보다는 작았다.

한국 재래 토종개 중에서 제일 작은 것 같았다.


더해서 육지개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징들이 있었다.

동체가 가늘었고 머리도 작았다. 주둥이가 여우처럼 뾰족했다.

사진으로만 보고 제주개가 잡견 생각이 들만큼 빈약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 체구의 가냘픈 특징에서 온 것이었다.

제주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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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인상을 진돗개와 비교한다면 진돗개가 다부진

권투 선수 같다면 이 제주개는 날씬한 기계체조 선수와 같았다.


육지 개와 다른 특징이 또 있었다.

눈매가 진돗개처럼 날카롭게 찢어진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칵커 스페니얼처럼 동그란 눈매가 매우 선해 보였다.

제주도에서는 제주개의 이 특색 있는 눈을 햇밤을 붙여 놓은 듯한 
형상 같다고
 묘사하며 이를 ‘통눈’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반대로 작은 눈은 ‘쥐눈’이라고 한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다.


북방견이라면 그런 눈매는 나올 수가 없다.

북방견은 그들 주인인 북방 아시아인이 빙하 시대를 살아오면서 
설원에서 눈부시게
 내쏘는 강렬한 태양 반사광을 막기 위해서 
눈의 몽골 주름이 생기고 가늘어 진 것과 
마찬 가지로 북방견들은 
그 눈매가 가늘게 찢어져 있다.

한 마디로 제주개의 눈은 육지개, 진돗개나 풍산개 그리고 
라이카 견과 
그 눈매에서부터 달랐다.


제주개의 작은 머리와 가는 동체는 파리아 견이라 불리는 
남방견의 특징이었다.

나는 여기서 제주도의 특성상  이 제주개의 조상이 진돗개등의 
조상과 달리 
원래 남방에서 오지 않았나 하는 강한 추리가 생겼다.

역시 나의 추정은 맞았다.

나중의 일이지만 나의 추측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의 사실이 
발견되었다.

일본인 교수인 야나기다 씨가 발표한 제주개가 중국 남방에서 
발견되는 절강성의 
개와 같은 계열이라는 것이라는 연구 논문을 
본 일이 있었다.


더해서 나는 한 조사 보고서를 참고할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진돗개나 육지 토종개는 a라는 북방견의 
유전인자만을 
가졌다면 제주개는 북방견의 a라는 유전인자와 함께 
일본과 대만개들과 같이 
남방견에서 발견되는 유전 인자인 b라는 
유전 인자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주개는 한국 토종개에서 유일하게 남방견의 혈통을 
나누어 받은 개이다
.


나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제주개의 모색(毛色)이 어떤지를 알아 보았다.

그가 말하는 제주개의 모색은 진돗개와 같이 여러 가지였다.

내가 본 개는 어미 개는 황개(황구)였지만 새끼중 하나는 
청개(흑구)였다.

한배에서 나온 두 모색의 제주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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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가 가장 많았지만 제주도에서 청개라 부르는 흑구도 있었고 
백구도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개의 모색이 개의 인기도와 성능 평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일 크게 주목 받는 것이 검은색의 흑구(청개),

두 번째로 평가 받는 것이 황구, 그리고 백구, 재구등의 순서로 
평가한다
.

진도의 흑구와 마찬가지로 청개( 흑구)의 높은 인기도에서 
제주 라이카의 영향을 느낄 수가 있다.

제주개들은 어려서 부터 사냥 본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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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특징들 외에 내가 제주견과의 첫 만남에서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제주개의 경쾌한 민첩성이었다.


이 스피드라는 면에 있어서 제주개는 진돗개와 확실히

차별화 되는 것이 있었다.


나는 한 때 개싸움 도박에 정신이 팔려 돌아 다니던 사람을 
알고 지냈었다.

그는 적잖게 돈을 잃었는데 그는 돈을 걸기 전에 개의 격투기 
실력을 알아 봐야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자습으로 
터득한 투견 지식이 해박했다.

허 은석씨 집의 청개 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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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러구 저러구 한 말은 다 잊어 버렸지만 그의 말 중에 
한 마디는 생각이 난다.

진돗개가 사나운 것은 사실이지만 개싸움 도박용 투견으로서 
조금 스피드가 부족해서
 개싸움의 진돗개는 빠른 개의 피를 
섞어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의 진위는 내가 알바는 없으나 진돗개의 움직임이 
듬직하고 절제되어 있다면
 제주개의 동작은 매우 민첩하고 
경쾌했다는 사실을 생각 할 때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짧은 시간 움직인 거리가 대단히 길었다.

나는 그렇게 많이 움직이는 개를 본 일이 별로 없다.


제주개는 상하의 점프에도 빨랐고 방향 전환도 빨랐다.


제주개의 인상적인 스피드가 머리에 입력된 상황에서 나는 
제주 방문길에 
또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로 내려가 
사업을 하는 분이었다.

그는 사냥이 주업이고 사업이 부업이라고 할 만큼 사냥을 
좋아 하는 사람이다.

제주개의 트레이드 마크 -장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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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만났을 때 나는 내가 진돗개의 조상일 수 있는 라이카의 
흔적을 
찾으러 왔다가 다른 제주 토종개를 만났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내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 나도 그 개 본 일이 있어요.

  그 개 데리고 가끔 노루 사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디다.”


제주도 국립공원에는 노루가 지천으로 많다.

노루 중에 일부가 농작물에 주는 피해도 자주 발생한다.

그런 노루를 제주개로 잡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불법이다.

제주도 밀렵꾼들이 설치한 노루 잡는 올가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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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농작물에 대한 피해가 심하니 농부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피해를 
줄여 보고 싶은 간절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제주개의 본분이 물론 사냥개였을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남해안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사라진 완도개, 거제개, 해남개등이 
사냥개였었고
 진돗개와 그의 조상으로 추리되는 라이카까지도 
사냥개인 것이다.


제주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었다.


노루 이야기에 나는 훨씬 전에 진도에 갔다가 들은 
진도 개사냥 전문가
 최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했다.


“내가 주로 잡은 노루들은 고라니들이었소.

뿔 달린 노루는 참 잡기가 힘들었어요.

고라니가 아홉 밭고랑을 넘을 때 이놈은 열 두 고랑을

뛰어 넘으니 개들에게 버겁습디다. 

내 평생 뿔 달린 노루는 딱 한 마리 잡아봤소"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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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노루들은 전부 뿔 달린 노루들이었다.

나는 최 선생의 말씀을 상기하며 제주개가 한라산의

뿔 달린 노루들을 잡았다는 것이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개의 빠른 동작이 생각났다.

노루 사냥에서 개의 스피드만 전부는 아니다.

자는 노루를 기습할 수도 있고 목을 잡고 도주하는 
노루를 덮칠 수도 있다.

그래도 스피드는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제주개의 스피드가 제주도 한라산의 뿔 달린 노루를 
여유 있게 해 낼 수 있다.

제주도 노루- 고라니 보다 훨씬크고 더 억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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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개가 사냥개이고 그리고 스피드가 빨라서 
한라산 노루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큰 발견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올라 와서 한동안 바쁜 일로

제주개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흘려보내다가 제주도 민속사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제주도의 민속사에 그 곳 사투리로 사농바치라 불리던 
사냥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육지의 호남 지방이나 영남 지방의 민속사와 너무도 
대조가 되는 것이었다.

농업 지대인 이 지방들의 민속사에서 사냥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


제주도의 민속사의 사냥을 보면 한국이 아니라 이국의 풍속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반세기 전 제주개의 농촌 성장환경 -제주화가 변시지씨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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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발견하고 제주의 허 은석 씨에게 자료를 
요청해서 받아 보았다.


역시 전문가답게 그가 제주 산골을 돌아 다니면서 수집했던 
여러 노래와, 
속담에서 개와 사냥에 관한 소재를 많이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제주도내에 산재한 마을 지명중 420여 개가 동물, 사냥과 
관련된 
지명일 정도로 사냥과 제주는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이있어왔다.


그가 수집한 전래 민속 소재의 주류는 사냥으로 17건 이며, 
수렵에 관한 사냥물등의 소재로서 
26건이나 있었다.

그 사냥의 사례에는 꼭 개가 등장하고 있었다.

개사냥이 과거 제주에는 주요 산업이었던 사냥에 역시 개가 
주인공이었다.
 

허 은석씨가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에 가서 만나 뵙는 
나이 드신 어른들중에는 사냥 경험자나 형이나 부친을 
따라 다니며 사냥 구경을 했던 분들이 많았었다.
술한잔을 대접하며 은근히 물어 보면 자신의 사냥 무용담을 
들려주시는 그런 분들이 마을마다 적지 않았었다.


제주에서의 개는 개인 택시 차주에게 차와 같은 수입 창출의 
도구 역할을 했다.

그러니 내가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에서 결론 냈듯이 제주도의 
애견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냥꾼을 지칭하는 사농바치라는 단어에서 끝에‘- 치'로 
끝나는 것에
 제주의 사냥이 몽골의 영향임을 강하게 느꼈다.


‘-치’라는 말은 "-꾼"이라는 말의 몽골어이다.

한국어에서‘- 치’로 끝나는 상당히 많은 단어가 몽골의 영향임을 
알 수가 있다.


허 은석씨가 그가 제주 산간을 돌아 다니며 힘들게 수집한 
사냥 이야기 중에서 
몇 가지만 아래 소개한다.

제주도 재야 자연 동물학자- 허은석씨(제주 소방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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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제주개가 노루들을 어려움 없이 
잡았던 사실은
 제주개가 뛰어난 사냥개임이 증명해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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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언자 : 이병춘 (남, 83세. 북제주군 애월읍 광령 1 리)

일시 : 2002. 1. 27


*1962년에 네눈박이 어린 청개 수놈을 키웠지 3 년 정도 
사냥을 하면서
 키우다가 65년도에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 
모 스님에게 넘겨주었어.


*능력은 어떠했습니까?

능력은 굉장했는데 혼자서 꿩 사냥을 너끈히 하였지. 
물론 주인하고도 하지만 
주인 없이 혼자서 사냥을 하는 거라!


그때는 개를 묶어서 키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때거든.

꿩을 잡아도 상처하나 없이 물고 오는데 참 이상한 것은 
자신도 배가 
고플 터인데 꿩에는 절대 손을 안대는 거야.


배가 고파도 눈앞에 있는 먹이를 먹어라! 하기 전에는 
먹지도 안 허여!

성품은 여러 마리 개들을 보아왔지만 참 굉장했어.

생각해보면 그렇게 사냥감을 물어 올 때마다 칭찬해준 것이 
그 덕분이 
아닌가 생각는데 산에서 오소리를 물을 때면 
정말 악바리 그 자체였어.


저런 개가 어떻게 사람을 따를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는데 
집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온순할 수가 없었어.......(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담배 연기를 내 뿜는다.)


지팡이만 집으면 먼저 앞장서는 거야!

산에 오르는 것을 아는 거지------


10년 후 75년경에 애월읍 유수암리 처갓집 상일로 묏자리를

알아 보러 갔는데 아! 이놈이 그 사이 유수암리에 팔려온거라!

그때만 해도 금덕(현 : 유수암리)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주게--
 (있었으니까)


10년 만에 이놈을 만났는데 꼬리치며 나에게 반갑다고 쫓아 
오는게 아니라?

그래 반갑기도 하고 벗 삼아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

그런데 집에 오려니 나를 쫓아오려는 거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너네 집에 가라! ”하니 흘끔 흘끔 뒤돌아보면서 
주인집으로 가는데 --

허참! 그 놈의 짐승이 영 사람 애를 좆개 허는거라..

( 사람 가슴를 미어지게 하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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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증언자 : 강해중 (남, 69세.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1리 )

일  시 : 2002. 3. 14

1944년 일제 해방 한해 전이었는데 내 나이 13살이었지.

새끼 때 가져온 2살 박이 백구 암컷을 6살 때까지 키웠었어.

사람도 먹을 것이 힘들던 시기여서 강아지에게 먹을 것으로 
줄 수 있는 것은 
두불조체(조를 도정한 후 나오는 두 번째 
껍질가루)에 보리밥 한 숫갈 섞어서 
주는 것이 전부였어.


그래도 이놈이 혼자서 들에 나가 꿩을 잡으면 자기도 배가 
고픈 것을 
내가 잘 아는데 상처를 내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 
오는 거라!

그렇게 사냥을 잘하기도 하였지만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어.


그때당시 일본 사람들과 조선 사람들이 개를 잡으려 몰려
다니면서 
마구잡이로 잡아갔는데 하루는 우리 동네에도 
개를 잡으러 왔었지.

이유는 뭐 병을 예방한다는 말로 기억하는데 어찌되었든 
그 동안 많이 잡아갔지....


우리 개도 몇 번 죽을 기회를 맞기도 했었지만 왜놈들이 
들이 칠 때마다 
도망가라 하면 산으로 도망가고 순회 살자
(정기적으로 마을을 돌면서 개를 잡아간 자)들이 돌아가면 
그 개도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똑똑한 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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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개 
------  
3.

증언자 : 양 남하 (북제주군 애월읍 상가리)

일  시 : 2002. 4. 22

배루라는 황개를 키웠었어.

사냥을 골고루 잘하여 노루 사냥을 잘하였었지만 무엇보다 
곰(굴)사냥이 특기였지.

동네 사람들이 별명을 지어 주었는데 “스프링” 이라 한 거야.


굴 가시낭(가시 넝쿨)이 우거진 자왈(가시 넝굴이 우거진 곳)이든 
어느 곳이든 어찌나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고 돌아다니는지 
그 동작을 보고 다들 스프링이라 웃으며

표현 하였주게.(으니까)


난장에서는 활동 반경이 보통 2km 이었는데 사람이 
계속 움직여도 사람의 
진행방향을 예측하고 주인 앞에 
딱하니 나타나는 개였어.

아무튼 우리 마을에 여러 마리의 사냥 잘하는 개들이 있지만 
이 배루라는 개도 
동네 사람들에게는 유명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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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증언자 : 양 대하 (북제주군 애월읍 상가리 1092-1번지)

일  시 : 2002. 4. 22

할아버지가 구로라는 검은 청개를 키웠었어.

난장이 특기였는데 특히 노루를 잘 잡았어.

같이 사냥을 가면 이 개는 사람이 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어서 
먼저 앞서 
나가는 거야


그러면 한 20분정도 지나면 이놈이 돌아오는데 그때 이놈의 
주둥이를 보면 
입 주둥이에 피가 묻어있거나 얼굴에 상처가 
나있으면 
아하! 노루를 잡았구나 하고 구로에게 
"어디니?고르치라!"
 (어데냐? 가리켜라!)하면 그 개는 앞장서  
노루를 잡은 곳까지 
앞장 서서 가는 거야!


가보면 영락없이 노루를 잡아 놓았거든.

이렇게 봉가(주워)먹은 것이 한 70여 마리 였다고 했주--?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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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 화제를 모았던 바둑이(어럭개)
제주개 -독구
1971년도 전 축협조합장 문광호씨 소유- 
이 네눈박이 사진에서 나는 진돗개의 조상찾기를 한 단계
더 진척 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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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자 : 양 홍식 (남, 59세 북제주군 애월읍 상가리 1092번지)

일  시 : 2002. 4. 22

나는 검은 어럭개(얼룩 개-바둑이)를 키웠었는데 몽둥이 형(形)

장대 꼬리를 한 개였지.

싸울 때는 이 개가 특이하게도 꼬리를 잘 사용하였는데 
웬만한 개들은 
꼬리를 맞고서 나가 떨어지는 거야.

어른들도 그 개의 꼬리로 허벅지를 맞으면 얼얼하였다고 하였지.


이빨이 다 없어질 때까지 살았었는데 어느 날은 개를 잃어 버렸어.

그때는 눈이 많이 왔던 때였는데 나중에 한 일주일이 지난 후 
눈이 녹아 
돌아 다닐 만하니까 개를 찾기는 찾았는데 죽어있는 
것을 찾았지.


허-참! 그 곳에 가보니 그 개가 오소리를 목덜미를 물고 죽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된 영문을 몰랐지만 원인을 
추정해보니 이빨이 없는 그 개가 오소리를 
보자 본능적으로 
물어 놓고는 이빨이 없어서 경추를 이탈시키지 못하자 서로가

기력이 다 할 때까지 싸우다 개와 오소리가 같이 죽었던 거야.


살아있을 한창 때는 오소리 잡기가 특기였고 노루도 
꽤 많이 잡은 명견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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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증언자 : 김병두 (74세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1리 3563번지)

일  시 : 2002. 5. 13.

나는 개를 직접 키우지는 않았는데 사냥을 하는 데를 
쫒아 다녔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양 임병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양 자출이라고 부르기도 
한 어른이었는데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도 건강하고 산을 잘 다녔었어.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노루피를 많이 먹어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해.


60년도 초에 백구를 키우면서 사냥을 하였는데 초기에는 
지달이(오소리) 
잡는 개로 시작을 하였어.


한 삼년쯤 되니 노루 사냥에 이력이 나는데 아마도 
100마리 이상은 
잡았던 것 같아.

분명히 달음박질은 노루보다 늦은데도 노루를 잡는데 
신통하거든, 알고 보니 
이놈이 노루를 쫒으면서 
머리 방향을 보고 가로 질러서 노루를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잡는거라!
참, 대단한 개였주.......


그 개가 그 사람과는 한 7살까지는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중에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가 그 사람의 고향인데 
그 동네 사람에게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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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 황개 강아지( 한배 출생의 형제)

7.

증언자 : 고 학명 (남, 88세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 )

일  시 : 2002. 6. 20.

내가 마흔 네 살 때니까 1958년 무렵이지.

외사촌 동생(안 창원 :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이 “구로”라는 
검은 개와 
“맹구”라는 황개(황구)를 데리고 사냥을 다녔었어...

내가 평소에 손발이 저리고 건강이 별로 좋지를 않았었어.


노루 피를 먹으면 손발이 안 저린다는 말을 듣고 내가 
사촌동생에게 사냥을 하자고 졸랐지.....


눈이 한창 오는 한겨울인데 두 참을 걸어가니 소나무 아래 노루가 누워 있다가 개들이 가는 것을 눈치 채고 7-8마리가 두 패로 
나누어 도망치는데 
그 자리에서는 한 마리도 못 잡았지.


그렇다고 헛걸음으로 돌아 올 수도 없고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무릎까지 빠지는데 그래도 남제주군

대정 남송이 꽂이라는 곳까지 간 거라.


이 길은 평소 사농(사냥)쟁이들이 다니는 길인데 조금 있으니

검은 개와 황개가 우리보다 앞서 가는데 노루가 튀어나오니 
구로가 
한 마리를 탁 물었어.

나는 그 자리에서 나무에다 밧줄로 노루를 매달고 노루 피 
한 마리 치를 먹었지.


그날 노루를 4마리를 잡고서 밤이 늦게 되자 우리 동네에서 
좀 떨어진 애월읍 납읍리 원동 야산에 있는 태우리들의
산막(목부들이 눈보라나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산에 
세워진 움막의 형태)에서 밤을 새우며 
분육(分肉-잡은 노루를 
공평하게 나누는 일)을 했어.

소 태우리( 소 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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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에게는 따로 먹이를 주지는 않았는데 움막에 걸쳐놓은 
솥에는 전날 밤에 해먹은 메밀 조배기가 조금 남았었는데 
개들이 그것을 다 먹는 거라.

허허-! 개들이 배가 부르니 사농을 할 생각을 아니하더군.


그래서 그날로 네 마리를 짊어지고 내려왔지.....

지금도 생각하면 자왈(가시나무가 얽어진 숲)에 들면

굴 가시 낭(가시 넝쿨)에 발굽을 찔리고  발이 알리고 시려서 
고생이 말을 못해!

그래도 우리 강아지들은 잘 돌아 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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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증언자 : 김제만(남, 75세  북제주군 애월읍 곽지리)

일  시 : 2002. 6. 28.


50-70년대 말까지 우리 동네에는 사농 꾼이 두명이 있었어.

내가 본 그 개들은 황구였는데 지다리(오소리)를 
가끔 하기도 하였지만 
노루를 많이 잡은 걸로 알고 있어.


몇 마리 ? --글쎄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못해도 아마 
1년에 
20마리 정도는 넉넉히 잡았을걸.........최소한 강아지가 
13년 어간 까지는 
사냥을 하였으니 한사람이 200마리 이상은 
잡았겠지 뭐!


그리고 나는 60년대 후반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밀감 나무를 심기
 시작할 때였는데 검은 개를 새끼 때부터 
키웠었어----


응! 자네가 말하는 청개라고도 했던 것 같아.

털은 조금 길다 싶은데 꼬리가 넓고 길게 퍼진 개였지.

그런데 그 때는 쥐잡기 운동이 한창 때였는데 
돗고기(돼지 고기) 기름에 
쥐약을 섞어 놓아도 먹지를 않았어.


한 번은 과수원에 감귤 창고를 지어놓고 집에 왔는데 
강아지가 
보이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잃어버렸거나 누가 잡아갔나 싶으면서 
못내 섭섭했거든.


그런데 다음날 과수원 창고에 가보니 아 -!글쎄 이놈이

창고 문 입구에 엎드려 창고를 지키고 있는 거라!


그때 정말로 감탄했지............

참! 기가 막힌 것은 덩치는 작은데도 
싸움에는 밀리지를 않는 거야.

싸울 때는 상대의 목을 물고 흔드는데 얼마나 악착같은지

전율스럽기도하고 감동적이기도 했어.........

4.3당시 서귀포 경찰서 - 제주개가 군견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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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증언자 : 강성인(남, 85세, 북 제주군 애월읍 용흥리)

일  시 : 2002. 11. 28.

내가 사농(사냥)을 했던 때가 마흔 살 때 부터였으니 
1946년경부터 시작했지.

70년대 후반 경운기 사고로 다리를 절기 전까지 
사농을 다녔지....

자네에게 말해준 강 조행이와는 한 일 년 동안 사농을 
같이 다녔었어.

할망(할머니 :할아버지의 부인)은 내가 사농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지.

그래도 그 짓(사농)을 허다 보면 그만두지를 못 허여  허허허-!


검은 개를 두 마리 키웠었어.

하나는 명도암(제주시 봉개동 중 산간 마을로서 과거 
사냥을 많이 하던 마을)에서 세살 된 것을 사왔는데

1960년 돈이 바뀌는 해(화폐개혁 당시를 이름)에 
이 만 원을 주고 사왔는데
그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지.
( 그 무렵 짜장면 값이 15원쯤 했음)

사냥 잘하는 개는 밭을 팔고 쇠 한 마리 값의 돈을 가지고 
가야 살 수 있었어.

사오는 날로 묶지 않고 풀어 내버렸는데 강아지한테

“집 잘 직허여! (지켜라)”하면 툇마루 난간에 
누워 오가는 사람을 살피는 거라.

아무 일없이 그냥 가면 놔두고 수상하면 꼼짝을 못 허였주.......


그 개는 5년을 부렸는데 덩치는 조그만 해도 노루를 일 년에 
어림잡아 
열 댓 마리는 잡았지.

이놈이 사냥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서 팔려고 계약이 성사되기

며칠 전 이었는데 그 계약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는데

그 놈이 죽어 버린거라!


왜냐구?

이놈이 해변에서 오소리를 발견하고 잡으려 하는데 
오소리가 좁은 돌틈에 몸을 숨겨서 
쉽게 잡지를 못 했던 거야.  

그냥 집으로 데려왔는데 이놈이 내가 없는 틈을 타서 
그놈을 잡으려고 
밤새도록 싸웠는데 나중에 보니 주둥이가 
다 없어지고 얼굴이 허옇게 변해버렸는데 그 이유는 
얼굴 상처가 심하니 파리들이 알을 싸놓아 구더기가 일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


어떻게 마땅히 치료해줄 수도 없어 놔두었더니 삼일 후에

또 노리(노루)를 잡은 후에 죽어 버렸지.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불쌍하고 속상해서 한동안 
개를 부리고 
싶지 않았어........


다른 검은 개는 도근내 뱅듸(제주시 외도동 도평)에서 
1년 된 
개를 데려왔는데 오소리를 잘 했고 노리(노루)에도 
좋고
 달음질도 좋았던 개였지.


그 당시 큰 개들은 25근 정도했고

작은 개들은 12 근짜리도 있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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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  상 : (강 상희- 서귀포시 하원동)

일  시 : 2003. 2. 22.

60-70년대 말까지 우리 동네에 바닷가에 지삿게에서는 
굴에 연기를 피워 
오소리를 잡기도 하였지만 하원동의 
강 상희가 가지고 있던 강아지는 노루를 
100 여 마리, 
오소리를 50여 마리는 족히 잡았다고 하지.


개의 능력이 하도 뛰어나서 스모르(서귀포 시) 지경에 
있는 사람이 밭을 팔아서 
강 상희의 검은 개를 
사러 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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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증언자 :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1리 (부인옥 : ‘05년1월 현재 54세)

대  상 : 부인옥의 조부(성명미상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일  시 : 2005. 1. 29.

증언자 부인옥의 조부는 구좌읍 세화리에 살면서 말을 타고 
개를 부려 
사냥을 하였는데 개에게 날아가는 꿩을 보고 
물라하면 착지점을 찾아 
반드시 잡아냈으며 노루를 잡는데도 
탁월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는 증언자가 15세 무렵에 86세의 할아버지 
말씀을 들은 
기억을 회상한 것이며 개의 크기를 물어 보니 
큰 개를 부렸다 한다.
 

제주도 이재수의 난에 개털 외투를 입은 사냥꾼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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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증언자 : 북제주군 한림읍 동명리  (진근동)

제공자 : 김덕만 (06년 1. 6일 현재 50세)

         양춘화 (06년 1. 6일 현재 56세)

일  시 : 2006. 1. 6.


*여기 한림 동명리 진근 동 속칭 샘터 일대에서는 선사인의 
흔적이 발견되고  
황곰, 사향 노루의 이빨과 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옛날 사냥했던 경험이 
있으시면 좀 부탁합니다.


80년도에 실제로 개를 부려 보지는 못하고 동네사람들 중에는 
사냥을 잘하는 어른들   따라서 노루, 지다리를 잡는 것 구경은 
많이 하였지.


*어떤 사람들이 사냥을 하였는지?

좋은 개를 가지고 있고 농사일이 끝나야 사농을 하는데 기본적인

기술도 있어야하지 보통은 노루나 지다리 주문을 받으면 
사냥 길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지


*개들의 모색(毛色)을 든다면?

보통은 황구, 백구,검은 개들인데 검은 개는 눈이 
네 개 모양이라서 
그런가, 특히 영리했었어. 
그런데 사냥 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개가 그 집에 놀러 가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를 못 했어


*기억나는 개나 환경 등 특징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토종개들은 오래 못 산 것 같아 기억나는 
개들은 지다리하고 
싸우다 입은 상처들이 너무 커서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애월읍 산간 화전마을 솔도에 가면 공초왓이 있는데 
집지을 나무를 하러 가면 
짐승들이 그렇게 많더구만.

10 년 전만해도 이 근처에도 지다리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근처에는 없어.


*사냥을 하면서 일화가 있었다면 ?

지다리 잡을 때 굴이 너무 길면 연기를 피워 굴 밖으로 몰아 내는데 
주로 
고추나무나 면화나무( 목화 대)를 가지고 갔지.
옛날 어른들이 해 왔던 방식이지 뭐-----


*기억에 남는 사냥꾼을 든다면?

애월 금성리에 (알동네:바닷가) 송석기라는 분이 있는데 
사냥에는 아주 능숙한 분이었지..


* 제가 가지고 있는 개를 본(사진) 소감은 ?

내가 알고 있던 그 개하고 꼭 닮았네. 전에는 이런 개가 많아 나수다.

덩치는 작아도 착하고 사냥도 잘했지 사람 말도 알아 듣는 
정말 똑똑한 개였어.

근데 이제는 이런 개를 못 보쿠다.

사냥허는 진돗개도 보아 봤주마는 이런 개가 
사냥은 잘 해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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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상: 박원칠 한림읍 금악리 (현재 63세)

일시: 2006년 4. 18.

내가 사농을 시작한 것은 약 40년 전 군대 가기 전이니 
19살, 20살 무렵이지.

지금 내 나이 62살이니 그 때부터 마흔이 다 되어 갈 때까지 
거의 20년은 
강아지를 부려 본 것 같네.

남들은 코(올가미)를 놓아 사냥을 하였지만 나는 개로만 허였주.


*사농은 대상은 주로 어떠하였는지?

어릴 적은 참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꿩 사농 까지 합하면 10년 
더해서 
그럭저럭 30년 세월은 되었네. 허허허----.

그래 어릴 적은 형이나 어른들이 하는 꿩 사농을

쫓아다니며 어쩌다 조금 떼어주는

고기 맛에 사농 밭을 정신없이 돌아다녔지....


어린 아이 티를 벗으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사농을 
시작하였는데 
수놈 어럭개(얼룩, 바둑이)였어.


대략 그 놈 하나로 지다리 150여 마리, 노루는 300여 마리를 
잡았었고 
아랫마을까지 내려가서 지다리를 잡다가 
그 동네 친구들이 자기네 
동네 지다리까지 다 잡아간다고 
놀리기도 하였지.


*평생 몇 마리 개를 데려났는지?

세 마리를 데리고 있었지만 그놈 수놈 어럭(바둑이)만한 
놈은 없었어.


*굴 사농은 어떻게 하는지?

굴이 쫄르민(짧으면) 직접 파 들어가고 굴이 질민(길면) 중간에서
따 들어가는데 
개들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어서 하는 법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개가 다칠 수도 있고 지다리도 보통 놈들이 아니어서 
쇠 꼬챙이를 가져 가서  도와 줘야 쉽게 잡을 수 있었어.

제주개의 굴사냥
-----

나 말고 다른 사농꾼의 경험으로 지다리(오소리) 귀를 잡아 들기 
힘들면 큰 놈으로 치기도 했었지.
나는 두 귀를 잡고 겨우 들만큼 무거운 놈을 잡아 보기도 하였지.


*다른 방법으로 지다리를 잡는 경우는 없었는지?

들에 나온 걸 잡은 초래가 셔나신디 곳자왈에서는 지다리가 하도 
도망을 잘 다녀서 개들이 쉽게 잡지를 못하는데 지다리가 
새왓(억새밭)디 들어간 거라.


새(억새)가 비보롬(비바람)에 다누어신디(다 누었는데) 지다리가 
그 새 사이로 
고개를 비쭉비쭉 내밀민 개가 튀어 들어 몰어 보민
(물어 보면) 
새만 물멍 치는디(억새만 물어대는데) 어떵허단?
(어떻 하겠나?)


지다리가 머리를 새 소굽으로(억새 속으로) 들미는게 
호꼼(조금) 늦었던 거라.

그 사이야! 개를 꽉 무난 그 걸로 끝이었주.

그런디 지다리 큰 놈은 개 두 마리가 물어도 개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아나서, 정말 큰 놈이었지.  


*노루 사냥 시에 개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헙니까?

내가 사냥물이 있을 만 한 곳을 천천히 걸어가면 개는 
한 10분 15분마다 
나한티 왔다가는 멀리 돋 곧 허주게. 

아맹해도(아무래도) 500m 주위에서 돌아 댕기당 오는 것 닮아 보여.

경허당(그러다가) ‘깨에에-’ 허는 소리가 들리민 ‘올커니! 잡았구나!’ 
허영(하고) 
소리 나는 디로 쫓아가 보민 잡앙싯곡(잡았습니다!) 
허는 거라!


*개가 사농허민(사냥하면) 다 잘 고르챠(알려) 줍니까?

짐승을 잡으면 다 고르챠 (가리켜)주지는 안 허여.

무산고 허민(무슨 말인가 하면 ) 자기가 오랜 시간 동안 
힘써 사냥물을 잡을 때 
주인이 도와주지 않으면 주인한티 위치를 
잘 가르쳐 주지 않아--- 
그래서 
잃어 버린 것도 적지안허여


경헌디(그런데) 보통 자기가 사냥한 것은 남에게 절대로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도 지다리같이 지독한 놈을 같이 
사냥한 동료 개에게는 만지는 것을 허락하더라고...


*개들은 아저씨 혼자만 부립디가(부렸습니까)?

대개는 나 혼자만 부렸지만은 동네에서 우리 집 개하고 안면 있는 
친구들은 데령(데려) 나가기도 허였주게.

그 때 사농허는 개들은 아는 사름이 지팡이 짚엉 글라!
(지팡이 짚어들어라!) 허민 
그냥 산으로 나샀 주머!


*그 때의 개는 어떵 허여수까?( 어떻게 하였습니까?)

음, 그 개가 사농을 잘 헌댄 소문이 나신디 중문 면 연리에서 
사름이(사람이)
 오란 개를 폴아주랜(팔아주면) 허는 거라 25만원을 
받고 폴아신디(팔았는데) 
그 돈으로 밭갈이 허젠(하는) 소를 샀지.


*지금으로 치면 한 300만원 헌덴 보아 사쿠다 양!

응-- 그 정도는 되겠지만 꼭 이렇다 하기는 그렇군...

그런데 그 개를 폴앙 나두난(팔고 난 뒤에) 그 개가 1주일 만에 
발을 
절룩 거리멍 동네로 와 신디(왔는데) 나를 보더니 
그냥 집으로 가버리는 거라.


얼마 후 중문에서 사람이 와 신디(왔는데) 나한테 사냥도 못하는 
똥개를 주었다면서 
욕을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그 사람에게 개는 왜 발을 저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개를 경운기에 
싣고 가다가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쳤다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그 개가 사냥개라는 것을 증명 하라지 뭐야!

그래서 발을 다친 개라서 걱정도 되었는데 오기도 나고 그날 밤 
노루 
사냥하는 것을 보여 주기로 하고 산을 올랐는데 한참 
안 보이자 그 사람이,


‘그것 봐라! 개가 그냥 집에 가 버렸잖느냐’ 핀잔을 주는 거야.


그런데 멀리서 캑 소리가 들리자 다가가보니 웅장(雄樟- 숫노루)을 
떡하니 
잡아 놓은 거라.


‘저것 봐라! 이래도 저 개가 똥개냐?’고 나무라자 그제야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나는 개주인 이 되지 못할 것 같다며 
돈은 돌려받지 않을 테니 대신 
그 노루를 주라고 하며 노루를 
어께에 짊어지고 집으로 가더군…….


*사농 잘 허는 놈은 어떵 생겨사 헙니까?(어떻게 생겼습니까?)

게메,(글쎄,) 꿩 사농 허는 놈은 귀가 좁아야 허고....

지다리 허는 놈은 귀사이가 넓어 사 좋은디.

노루 허는 놈은 털 발이 앞으로 오그라진(고시락털, 낚시털)놈이 
호꼼(조금)
 나신 것 같아 (조금 나은 것 같아)뵈긴 허고...


*사농허영(사냥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60년대 초 그 때는 보리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 그 시절에 
군대를 갔는데 
가기 전에 지다리 세 마리를 먹엉가서(먹고 갔어),

경헌디(그런데) 다른 훈련병들은 다들 몸이 비쩍 마르고 고생들 
허여신디(하였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은 거라!

그게 몸에 좋기는 좋았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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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증언자 : 정정권(1962년생) 제주시 이도 2 동 888 이도 주공 아파트

일시: 2006년 4.18

나는 1974년도 제주시 해안동 이모부 집에 자주 놀러가곤 하였는데 
이모부는  
본래 해안동 출신은 아니었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50년을 해안동에서 살아온 분이고 가족들도 06년 현재까지 
살고 이수다.


그 당시 이모부(김임학 2006년 6월 사망, 향년 76세)댁에는 
사냥을 잘하고 
인상적인 제주 개가 있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 허여마심( 합니다).


그 개는 머리통이 크고 귀가 서있었는데 눈통이 좌우로 길게 찢어져
날카로운 
눈매에 감히 접근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였고 
가슴이 넓고 컸는데 뒤 쪽보다 
앞이 당당하고 크게 느껴지는 
개 라나수다(였수다).


사촌들하고 들판으로 꿩코(꿩 올가미)를 놓으러 다닐 때면 
주위에 쉬지 않고 
수색을 하는 등 부지런하고 개 이름을 부르면
즉시 귀소 하는 훈련이 잘 된 개였는데 ,

그 개는 이름이 “구로” (일본어로 구루는 검다-黑-의 뜻)였는데 
내가 어려서 보아서 그런지 덩치도 크고 털색은 전체적으로 검고 
얼굴, 목, 다리 등으로 회색, 
황색이 어울린 개였는데 겨울만 되면 
노루, 지다리 사냥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개로 기억하고 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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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는 제주개의 사냥 일화를 수집한 것이지만 제주도에도 
육지의 오수개와 
비슷한 전설이 있는 것이 특이해서 수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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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증언자: 조 영봉(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애월읍 봉성리 노인회장)

일시: 미상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공초왓 부근에 '맹구드르(名犬野 )'가 있다.

이 들의 이름은 개와 주인 간에 얽힌 전설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하루는 개 주인이 개를 데리고 넓은 들로 놀러 나갔다.

바람을 쐬며 술을 마시는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취해서 
잠에 떨어져 버렸다.

주인이 술에 취해 잠을 자는 것을 개는 곁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들에서 불이 일어나 주인에게로 타들어오는 것이었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뿐만 아니라 아주 영리한 개였다.

불이 활활 타올라서 주인이 죽게 된 것을 알게 된 개는 실 개천
물로 달려가서 몸에 물을 적셔다 불을 끄기 시작해서 불이 
꺼질 때까지 이 일을 계속했다.

주인이 잠에서 깨어보니 주위는 모두 불 타있었고, 개 역시 
불을 끄다 타 죽어 있었다.

"아-! 개가 나를 살렸구나! "

개를 곱게 묻어줬는데 이 일로 해서 공초왓 일대를 
맹구드르 (名犬野)라고 불린다. 

맹구드르 (名犬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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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제주 개는 우수한 사냥개다.

그러나 우수 순종 보존에 나선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할 일이 많다.

진돗개가 1950년대부터 국민의 관심을 받아왔고 
그간 쏟은 관계자들의 정성과 
투자도 많아서 완전히 국견으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개는 
아직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 축산 진흥원에서는 수십 여 두의 제주개로서 계속 
육종 개발 중이지만 
천연 기념물 지정까지는 할 일이 태산 같다는 
관계자의 말이다. 


제주견 연구회라는 민간 단체도 있어서 서로가 정보를 교환하며 
제주견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모든 노력이 결실 맺어지고 제주도 당국의 좀 더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서 제주개가 오천만 한민족의 당당히 사랑받는

주요 토종개의 하나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  


내가 제주도를 오고 가면서 늦게 발견했던 제주개의 
우수한 품성을 생각하면 
우리의 토종개, 제주개는 틀림없는 
육지 애견가의 인기견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몇주내로 허 은석 씨에게서 빌린 자료로 엮은 제주도 '흑소'와

    진도를 방문 취재한 '사냥 진돗개'에 대한 글을 포스팅 할 예정이다.



제주개의 글이 포스팅 된것을 안 허은석씨가 자기 청개 검돌이가 
마침 청개 강아지 다섯 마리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어머니는 황개라고 한다. 

검돌이는 내가  몇 년 전에 막연한 기대를 하고 제주에 가서 처음으로 
만난(라이카의 흔적인 )네눈배기 특징을 가진 제주개다 
혼자 보기 아까워 포스팅한다.

강아지들은 오늘 6월 10일 현재 꼭 닷새된 어린아기들이다.

새끼들이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서 잠깐 포즈를 잡는 동안 
아비 검돌이가 걱정스럽게 지켜 보고 있다. 
허은석씨는 이렇게 청개를 많이 얻기는 힘든일이라고 하며
전부 기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검돌이 

그리고 검돌이의 새끼 강아지들 -아비는 청개, 어미는 황개이다 

제주개 청개 강아지들 - 생후 5일 

제주개 청개 강아지 

검돌이와 새끼들 

원문출처 울프독 산사람

정통을 지키는 제주견 지킴이 ....

 
원문출처 배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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